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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다>를 보고서
    독후감 2018. 12. 20. 18:30




    <읽다> - 김영하


    독서는 왜 하는가? ...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와의 투쟁일 것이다. ...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히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다. ... 어떤 책은 분명 우리를 살짝 미치게 만든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작용한다.


    소설은 분명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을 너무나도 설득력 있고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현실보다 더 현실이라고 믿을 때가 많다.


    이야기가 아무 힘도 없다고? 당신이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믿)는 거의 모든 것이 이야기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책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나라는 인간의 정신 안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유일무이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된다. 한 번 읽어버린 소설은 더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 없다. <위대한 게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나가사와의 말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자아 안에 공유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현실의 자연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다. 강가의 오리나무와 버드나무는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진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독자는 그뒤에 의미가 감춰져 있다고 믿기 때문에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것이다. ...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이없는 일을 겪는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조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한다.


    나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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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읽어본 김영하 작가의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좋은 소설들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세레나데 같은 책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문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많은 책을 읽고 경험해야지.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읽는 도중에 대략 이런 부분이 나온다.


    [<마담 보바리>의 저자 플로베르는 독자들이 쉽게 소설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한다. 시점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자주 이동시키고, 과감한 생략을 구사하고, 로맨스에 꼭 필요하지 않을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중심을 향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에마가 죽고 샤를르가 파산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독자는 허탈한 느낌에 마지막 장을 다시 들춰본다. 그렇다. 분명히 소설은 끝이 났다.


    플로베르는 중심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박솔뫼 작가가 떠올랐다.

    아래는 내가 예전에 박솔뫼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남겨 놓은 메모이다.


    [박솔뫼 작가의 <을>을 읽고 있는데 넘나 묘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문장은 담담하지만 담담한 내용을 그려내지 않는다. 문장도 길고, 주인공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야기를 따라갈만한 힌트도 너무 적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있고 또 장면 상상도 잘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을>을 읽으며 담담하면서 멋진 문장들에 매료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읽어 내고는 했다. 왜? 라는 의문과 함께! 심지어 작가님에게도 왜?라는 의문이 들고는 했는데, 박솔뫼 작가도 플로베르처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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